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말레이 해전 (문단 편집) === '''[[영국동양함대궤멸]]''' === 12월 10일 오전, 일본군 정찰기 중 1기가 쿠안탄에서 끝내 Z 함대를 발견하여 [[G3M]][* [[G4M]]이 등장하기 이전의 일본 해군 주력 육상공격기. 96식 육상공격기로 칭하기도 한다.] 폭격기들이 2차례에 걸쳐 출격했고, 오전 10시 및 11시 13분경에 각기 폭격을 실시했다. 이 폭격에서는 단 1발만이 리펄스의 4번 포탑에 명중했으며, 그나마도 별다를 피해를 주지 못했다. 또한 이 폭격을 기점으로 영국 함대는 일제히 대공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진짜 타격은 [[뇌격기]] 편대에 의해 이뤄졌다. 17기의 일본군 G3M 편대가 11시 40분경에 뇌격을 실시했고, 여기서 어뢰들 중 1기가 프린스 오브 웨일스의 B번 엔진실에 명중해 침수됐고, 한쪽 스크류를 잃은 프린스 오브 웨일스의 속력은 최대 항속의 절반인 16.5노트(30km/h)로 떨어졌다. 12시 20분경에 [[G4M]]편대가 추가로 뇌격을 실시했다. 상처입은 프린스 오브 웨일스에 어뢰 3기가 적중했고, 리펄스에도 어뢰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리펄스는 우수한 조함 실력으로 어뢰들을 회피했지만 거기까지였다. 1발의 어뢰가 좌현에 명중한 것을 시작으로 3발 이상의 어뢰가 리펄스를 강타했다. 안타깝게도 리펄스는 [[리나운급 순양전함|1차대전때 건조된 노령함]]인데다가 자매함 리나운과 달리 대개장도 받지 않아서 어뢰공격을 받아도 버텨낼 벌지도[* 벌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리나운이 킹 조지 5세급의 출현 전까지 영국의 최강 전함이었던 퀸 엘리자베스급의 벌지를 재생해서 장착한 반면, 리펄스는 퀸 엘리자베스급의 건조 비용에 부담을 느끼고 싼맛에 뽑아낸 리벤지 급의 벌지를 재생해서 달았는데다가, 그나마도 리펄스는 이렇게 해도 되는지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 베이스였다.], 현대적인 장갑도 갖추지 못했다. 결국 난타당한 리펄스는 6분만에 함수쪽으로 전복되어 침몰했다. [* 당시 리펄스의 함장이었던 윌리엄 테넌트 대령은 살아남아, 서인도 제도 함대 사령관까지 승진한다.]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 단 하나의 스크류만이 남은채 끈질기게 저항을 계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12시 40분경에 추가로 달려든 일본군 폭격기들이 갑판에 폭탄을 명중시켰고, 부상당해 쓰러져 있던 수많은 영국 승조원들이 목숨을 잃었다. 더 이상의 저항이 불가능함을 깨달은 필립스 제독은 퇴함을 명령했고, 몇분 지나지 않아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 침수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한편 이 시점에서 전멸 직전에 이른 Z함대는 무선침묵을 깨고 모스 부호로 SOS 신호를 타진했다. 이에 깜짝 놀란 호주 제453비행중대의 F2A 버팔로 10대가 부리나케 달려와 오후 1시 15분에 도착했지만 이미 일본 항공대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고, 프린스 오브 웨일스가 물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과 리펄스의 잔해를 구경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참고로 이들이 조금만 더 빨리 출격했다면 프린스 오브 웨일스가 격침을 피할 수 있었다는 말이 있으나, 애초에 F2A 자체가 좋다고 말하기 어려운 전투기인데다가, 머릿수가 너무 적어서, 이들이 조금 더 일찍 도착했어도 Z함대의 운명이 바뀌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다행히 호위구축함들이 신속히 구조작업을 했기 때문에 많은 승조원이 구조될 수 있었다.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 구축함 익스프레스가, 리펄스의 승조원들은 구축함 일렉트라와 뱀파이어가 구조했다. 필립스 제독은 만류하는 참모들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배를 빠져나가지 않고 배와 운명을 함께 했다. 부하들에게 건낸 필립스의 마지막 유언은 '''"굿바이."''' [[함장]] 존 리치 [[대령]][* [[비스마르크 추격전]] 당시 비스마르크의 주포탄이 함교에 명중했을 때도 별다른 부상 없이 살아남았었다. 참고로 이 당시에는 대령 본인과 부하 한 명만을 제외하고 나머지 인원들이 전부 몰살당한 상황이었는데도.]은 마지막까지 퇴함을 지휘하다 최후의 순간 탈출했지만, 함이 침몰하면서 발생한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목이 부러져 전사했다.[* 침몰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존 리치 대령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한편 일본은 1941년 12월 10일 당일 [[영국동양함대궤멸]]이라는 군가를 만들어 방송하며 전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